지브리 영화 중에 최고를 꼽자면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노노케히메를 말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원령공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풍부한 영상미, 뚜렷한 주제의식, 개성 있는 캐릭터 등으로 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으며 오래된 애니메이션임에도 여전히 명불허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노노케히메의 줄거리와 주제를 알아보고 각 캐릭터와 주요 장면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분석에는 제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 있습니다.)
줄거리
동쪽 깊은 곳에 있는 평화로운 마을에 갑자기 재앙신이 나타납니다. 재앙신의 몸에 닿은 것들은 모두 썩어 들어가고 마을의 청년인 아시타카는 재앙신을 막기 위해 활을 쏘다가 재앙신의 몸에 닿아 팔에 상처를 입습니다. 재앙신은 사실 서쪽 산의 주인이었는데 인간에 의한 분노로 재앙신이 되었던 것이었고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인간을 원망합니다. 마을의 무녀는 재앙신의 몸속에서 발견된 철 덩어리가 분노의 원인일 것이라고 하며 아시타카의 팔의 상처는 재앙신의 인간에 대한 저주이며 그것이 아시타카의 몸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시타카는 철 덩어리의 정체를 찾아내고 자신의 저주를 풀 단서를 찾기 위해 마을을 떠나 서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서쪽의 어느 마을에 도착한 아시타카는 그 마을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연을 수호하는 들개신과의 깊은 갈등을 지켜보게 되고 자신의 마을에 왔던 재앙신도 이 마을에서 탄생했음을 알게 되는데...
주제
모노노케히메의 주요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과 이런 인간을 미워하는 동물 간의 갈등을 중심에 두고 이 둘 사이를 중재하는 주인공을 배치함으로써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간의 다툼과 갈등도 다루면서 자연뿐 아니라 같은 인간끼리도 파괴하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폭력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분석
아시타카
주인공 아시타카는 모노노케히메의 주제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쪽 작은 마을에서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온 그에게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당연한 것이었고 이는 그가 작품 내내 인간과 자연 중 특별히 한쪽을 편들지 않는 것을 통해 보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에게는 이를 경고하며 제지하고 자연을 지키는 동물에게는 나쁜 인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그 둘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매개체 캐릭터인 산과 함께 사슴신을 수호함으로써 재앙신에 의한 상처가 치료되는 모습은 인간의 자연파괴로 인한 재앙이 결국 인간에게 돌아가지만 이 또한 자연에 의해 다시 회복되는 것으로 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며 인간과 자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중간에 선 아시타카의 모습과 그의 상처가 치료되는 과정은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시타카는 작중에서 목숨이 걸린 저주를 받고 갖은 고난을 겪게 되지만 이런 고난 속에서도 선하고 도덕적인 마음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벽한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지브리 남자 주인공 중 최고로 꼽히는 캐릭터입니다. 잘생긴 얼굴에다가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심지를 가지고 여자 주인공을 지키는 모습까지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캐릭터입니다. 본래 작품은 아시타카의 전기라는 제목으로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아시타카의 너무 완벽한 모습 때문에 관객들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고 생각한 지브리 직원이 미야자키 하야오 몰래 모노노케히메로 제목을 변경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산
산은 들개에게 키워진 인간으로 인간과 들개 사이 어디에도 완벽히 낄 수 없는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늘 소외감을 느꼈을 그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아시타카가 그녀의 인간적 면모를 끌어내며 처음에는 인간을 미워하지만 아시타카라는 중간자적 인물을 통해 인간과의 대결구도에서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잇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아시타카는 좋지만 다른 인간들은 싫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아 여전히 인간보다는 자연의 편에 가깝게 보이지만 인간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경험을 통해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임에는 변함없는 거 같습니다.
사슴신
서쪽의 숲을 관장하고 있는 사슴신은 삶과 죽음을 다루는 신입니다. 사슴의 모습을 하고 있어 자연의 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는 인간이나 자연에 상관없이 공평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이자 동쪽에서 온 이방인인 아시타카가 크게 다쳤을 때는 나타나서 치료해 주었지만 그 숲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지켜온 들개신은 영원히 잠들게 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슴신이 상징하고 있는 삶과 죽음은 인간과 동물 그중 누구의 편도 아니며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인간과 동물 모두 삶이라는 유한한 굴레 안에 있기 때문에 서로가 대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여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애보시
애보시는 모노노케히메에서 진취적인 여성캐릭터이자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 마을을 이끄는 대장으로서 마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연파괴와 사슴신 사냥과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극악무도한 그녀이지만 마을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우대하고 전염병 환자를 편견 없이 대하는 등 진취적이고 열린 모습을 보여주고 마을을 부강하게 만들기도 한 인물입니다. 다만 욕심이 과한 탓에 자연을 심하게 파괴하게 되고 때문에 산과 들개신에게 미움을 받고 결국에는 팔을 잃으며 벌을 받는 인물입니다. 사슴신과의 전투 이후에 힘들게 일궈온 마을을 통째로 잃지만 더 좋은 마을을 만들자는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보아 그녀가 전과는 다르게 자연친화적인 마을을 세울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아시타카는 처음부터 이상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지만 애보시는 인간만을 위하는 모습에서 자연친화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는 변화하는 인물을 상징하여 자연파괴를 일삼는 현대인들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자연과 상생하는 모습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코보
지코보는 인간 중에서도 이기심이 극대화된 인물을 상징합니다. 사슴신 제거를 위해 같은 인간인 애보시를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부하가 다치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보시도 자연을 파괴하긴 하지만 자신의 마을 사람은 아끼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지코보의 경우는 사슴신을 잡아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만 노리는 이기주의자로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인간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들개신 모로
인간에 의해 버려진 산을 거두어 키운 들개신 모로는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캐릭터입니다. 자신의 터전인 숲을 파괴하는 인물 애보시와의 계속된 갈등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을 미워하지만 자신이 키운 인간은 애정하며 인간에 대한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아시타카라는 인물이 딸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 청년과 같이 살아갈 수도 있겠다고 딸에게 말하는 장면은 모로가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를 가진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장면분석
아시타카가 마을을 떠날 때 어떤 소녀가 그에게 목걸이를 주는 장면
아시타카와 그 소녀는 사실 약혼관계라고 합니다. 아시타카가 마을에서 떠나면서 약혼관계가 자연스럽게 깨졌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약혼녀가 자신을 기억해 달라며 목걸이를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시타카가 그 목걸이를 산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선물 받은 걸 다른 여자에게 줘버린다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끝나버린 약혼관계이기 때문에 도덕적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산에게 목걸이 말고 다른 걸 선물로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반응이 많긴 합니다.
인간끼리의 갈등과 전쟁 장면
모노노케히메는 일본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인간과 자연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인간끼리의 싸움도 많이 보입니다. 초반에 길을 떠나는 아시타카가 목격한 무사들의 싸움이라던지 타타라마을을 점령하러 온 옆 마을과의 싸움과 같이 인간끼리 영역을 침범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요 주제인 자연과의 갈등뿐 아니라 인간끼리의 다툼 또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쟁을 싫어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이 담긴 것으로 그의 많은 작품들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이 흐르고 있고 모노노케히메 또한 일맥상통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재앙신에 의한 상처를 입은 아시타카의 팔이 멋대로 움직이는 장면
작중에서 아시타카의 상처 입은 팔이 그의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시타카가 애보시의 마을에서 만든 총알에 의해 재앙신이 만들어졌으며 애보시가 이에 대해 반성의 자세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아시타카 팔이 멋대로 꿈틀거리면 칼을 뽑으려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분노와 원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런 인간들을 비판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타카가 산에게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고 말하는 장면
아시타카가 크게 다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산을 보며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이를 듣고 산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게 되고 그 이후부터 그에 대한 적대감이 점점 누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사는 그녀의 외모를 칭찬한다기보다는 그녀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이라고 사람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에 숲에 버려져 들개\의에 손에 키워진 그녀는 인간을 미워하는 자신의 들개 가족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그들에게 스며들 수 없음을 수도 없이 느꼈을 것이고 이는 고로가 그녀를 불쌍하고 추악한 딸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아시타카가 처음으로 그녀의 존재를 긍정하는 말을 해주었고 이는 그녀의 마음을 동요하게 하기 충분한 말이기 때문에 그녀가 그토록 놀랐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아시타카와 산이 만남을 약속하는 장면
사슴신의 머리를 돌려준 후에 아시타카와 산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살기로 하지만 언젠가 재회를 약속합니다. 이 장면은
그 둘이 혼인을 약속하는 것이며 남편이 아내가 있는 곳으로 왕래하는 고대의 혼인 형태로 살아갈 것임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실제 콘티에도 산이 아시타카의 청혼을 받아들인다고 써져 있어 둘이 혼인관계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귀여운 코다마가 다시 하나씩 나타나는 장면
코다마는 숲이 평화로울 때 나타나는 정령으로 사슴신이 쓰러지면서 같이 사라졌다가 마지막에 다시 한 마리씩 나타납니다. 이는 숲이 회복되고 평화로워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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