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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추천&리뷰

(영화 리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리뷰

주제에 대하여

사랑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릴 적 애정결핍은 결코 메꿔지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츠코의 조카가 마츠코를 떠올리며 자신의 여자친구가 했던 말을 생각해 내는데 그게 바로 사람의 가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츠코의 전 남자친구인 료가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준 마츠코를 신이라고 말하는 것도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라는 주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마츠코는 받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왔기 때문에 마츠코는 진정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일생은 힘들긴 했지만 제목과는 달리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이 작품의 주제로 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사랑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상대방을 필요로 했을 뿐이며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집착을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츠코의 전 남자친구가 아무리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해고 그녀는 '괜찮아 혼자인 것보다는 나아'라고 되뇌는 것을 봤을 때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마츠코의 사랑은 상대의 내면이나 그 자체를 애정하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집착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때문에 나는 첫 번째 주제보다는 두 번째 주제인 어릴 적 애정결핍이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가 이 작품의 더 적절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마츠코는 아픈 동생에게 더 신경을 많이 쓰는 아버지 때문에 어릴 적부터 애정결핍을 느끼며 자란다. 어떤 짓을 해도 자신보다는 동생을 보는 아버지 때문에 어린 마음에 적잖이 마음앓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상처는 그녀의 자존감을 떨어뜨려놨고 그녀가 나쁜 남자친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무리 행복해지려고 발버둥을 쳐도 어릴 적 결핍으로 인해 평생을 노력해도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그녀의 슬픈 모습은 어릴 때 적절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많은 이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불러올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사랑은 주는 것이다라고 여러 번 강조하며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 내내 스며 있는 마츠코의 애정결핍이 모든 일의 원흉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있기 때문에 두 번째가 좀 더 보편적인 주제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마츠코를 정말 사랑하지 않았을까?

사랑하긴 했다 다만 표현이 너무 부족했다.

마츠코의 비참한 인생의 원인이 아버지의 사랑부족인 만큼 그렇다면 과연 마츠코의 아버지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해진다. 내 생각에는 아버지 나름대로 마츠코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극 중에 마츠코가 집을 나가 여러 남자와 사건들을 겪고 오랜만에 본가로 왔을 당시 발견한 아버지의 수첩에는 매 장마다 마츠코에게 연락 없음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딸을 걱정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픈 딸에 신경 쓰느라 마츠코를 등한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합리화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나름대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을 마츠코에게 표현했어야 한다. 그저 딸이 알아주겠지 하고 표현하지 않은 것이 큰 화를 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애정표현을 잘 못하는 부모를 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아무리 커서 부모님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했다는 걸 깨닫는다고 해도 그때 받지 못했던 애정표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큰 구멍으로 다가오는지를 말이다. 때문에 나는 마츠코의 어려운 인생이 아버지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닌 아버지의 사랑표현이 부족하여 생긴 마츠코에게 생긴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연출에 대하여

신선하긴 하지만 너무 과하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연출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를 본 적이 없어도 한 번쯤 이 영화의 연출에 대해서는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쨍한 색감과 만화에서 쓸 거 같은 효과들 그리고 뮤지컬을 보는듯한 장면까지 다양한 연출을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때려 박아서 과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런 연출들은 일단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일본 특유의 우스꽝스럽고 과장스러운 느낌에 보면서 이런 연출이 영화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이런 화려한 연출들이 마츠코의 험난한 인생과 대비를 보이며 그녀의 비극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효과가 있다. 그녀의 인생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에도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쨍하고 예쁜 색상의 꽃이 함께 배치된다. 꺼져가는 그녀의 생기와 다르게 찬란한 꽃의 빛깔들이 그녀의 어둠을 더 어둡게 보이게 하며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녀의 비참한 일생을 예쁜 포장에 싸서 보여주는 기괴함에 이 영화를 흥미롭게 봤다는 사람도 있지만 보기 괴로웠다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이 작품의 연출에 대해 사람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나는 연출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연출이 이야기를 조금 가린다고 느껴졌다. 우선 마츠코가 힘든 삶을 살게 된 원인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화려한 연출로 요약하듯 다루어서 그녀의 결핍에 큰 공감을 하기 힘들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녀의 인생의 큰 부분인 만큼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그 둘의 관계를 상세하게 다루었다면 어른이 된 그녀의 잘못된 선택에 조금 더 공감을 했을 수 있을 거 같다. 또한 장면이 끝나고 나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고 여운을 느껴보고 싶은데 끊임없는 화려함이 영화 보는 내내 쏟아져서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과한 연출을 조금 덜고 스토리에 좀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솔직히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유명해지진 않았을 거 같다. 연출 자체는 신기하다. 마치 강렬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나면 눈을 떼도 잔상이 남는 것처럼 다 보고 나서도 영화 속 장면들이 계속 떠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감독에 대하여

인간의 결핍에서 위로를 느끼는 사람 그리고 결핍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결핍은 결코 감추지 않은 죄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의 감독은 나카시마 테츠야라는 사람이다. 이 작품 외에도 불량공주 모모코, 고백, 갈증 등 꽤 유명한 작품들을 제작하며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감독이다. 이 감독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결핍과 그로 인한 인생의 붕괴를 다루고 있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의 주변에 괜찮은 사람은 없었고 자신 또한 결핍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결핍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결핍 있는 인물들이 그로 인해 인생이 망가져가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한다. 감독은 결핍 중에서도 가정에서의 결핍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조의 사회인 가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한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그도 자신의 결핍을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모범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배우나 스태프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화를 내는 등 가혹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 역을 맡은 배우 나카타니 미키는 그가 촬영현장에서 했던 부적절한 발언들을 언급하면서 그의 매정하고 배려 없는 촬영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또한 갈증이라는 작품에서는 여배우의 사전 동의도 없이 원치 않는 장면을 억지로 찍게 했다는 것이 나중에 폭로되기도 했다. 인간의 결핍을 다루어 인간을 위로하고 싶다는 사람이 자신의 인격적 결핍은 돌보지 않고 그대로 방출하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는 점이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졌다.

 

총평

영화가 유명하다는 말에 호기심에 한 번쯤 보기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큰 울림과 위로는 글쎄..

이 영화의 평은 정말 극과 극을 달린다. 이 영화가 인생작이라는 사람과 최악의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크게 갈린다. 일단 인생작이라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마츠코의 인생이 철저히 망가지지만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진다는 점에서 위로가 된다고 한다. 마츠코는 평범한 사람이 겪기 힘든 일을 연달아 겪지만 스스로를 저버리진 않는다. 모든 걸 잃고 히키코모리처럼 집에서만 박혀있을 때도 티브이에서 아이돌을 보고 희망을 품어보기도 하고 이후 더 큰 수렁에 빠질 때도 도움을 청할 옛 친구의 명함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끝까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위로가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그녀의 일말의 희망도 끝까지 밟아버리는 결말 때문에 이게 위로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영화 중간에 아버지의 수첩을 발견했을 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결핍이 조금씩 사라지는 과정을 다뤘다면 위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명함을 찾고 친구한테 도움을 받아 갱생을 하던지 그런 결말이면 괜찮았을지도. 영화가 과하고 신선한 연출과 그녀의 불행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거 같아서 영화를 보고 울림이 있다던지 위로가 됐다던지 그런 느낌은 못 받았다. 그냥 큰 기대 없이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쯤 보기는 나쁘지 않은 거 같다. 물론 정신이 건강한 사람에 한해서 말이다.